
통합의 역사로서의 동서의학의 전개과정과 현재의 示唆
Ⓒ The Society of Pathology in Korean Medicine, The Physiological Society of Korean Medicine
Abstract
The processes that Korean Medicine(KM) and western medicine have developed their respective disciplines and expanded their organizations were reviewed from an integrative perspective. Based on this review, current strategies for expanding the scope of practice of the KM field were derived. In KM, the goal of integrative medical education is to provide standardized interpretations of commonly accepted fundamental KM theories and integrative understanding methods between modern medicine. Historically, from the early stages of KM's history, encompassing the formation of the Yellow Emperor's Inner Canon and Treatise on Cold Damage and Miscellaneous Diseases, and throughout the entire period up to the present, there has been a continuous process of integrating heterogeneous medicinal knowledge and medical theories. As has been the case so far, integration is to strengthen the ‘scientific principles’ requested by the government and courts to define and identify ‘Korean medical practices’. Therefore integration is an indispensable element for the advancement of medical association and medicine itself, and a concrete consensus among KM members regarding the methods of integration is essential to achieve it.
Keywords:
Medical History of Integration, Korean Medicine, Western Medicine서 론
2000년대 후반 한의학의 위기에 관한 보도 이후1) 2016년 슈왑이 4차산업시대를 예고하고 과학기술을 수반하는 의료환경이 급변하면서 위기는 심화되었다.2) 정밀의료기술, AI를 이용한 진단기술, 바이오헬스, 디지털의료 등의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하고, 코로나 기간에 한시적으로나마 원격의료가 허용되기도 하였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의학은 건강보험재정의 지급률이 3.1%로3) 떨어지고 있어 내수 및 세계시장 확대를 위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해방 후 한의학의 보존을 위해 1951년 한의사제도를 만들고, 1987년 2월 1일 이후 전국민 한방의료보험을 실시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지만 사회제도로서 인정되었기에 그 이후의 자생(自生) 여부는 한의학 주체에 주요 책임이 있게 된다. 한의대 설립 시기부터 한의학의 과학화를 주창하고, 1997년 이후 본격적인 한의분야 정부 지원으로 염증과 종양 등의 개별질환과 침구 및 한약재 등에 관한 표준이나 기전을 규명하는 실험적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2016년 이후에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사업을 통하여 질환별로 2025년 현재 75종의 근거중심의학 체계1)를 제시하였다. 그간의 이런 진지한 과학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위기가 심화된다면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상세히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의계는 반드시 그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근거하여 근본적인 해법을 탐색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원인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제도적 소외이므로 해법은 한의사의 직무 범위를 확대하고 사회 제도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는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치적 기본 질서가 안정되고, 강력한 이권 경쟁업계가 공존하는 자유시장 경제에서 제도에 진입하려면 의미가 사회 일반에 보편적으로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소통을 위한 대안을 두고 한의계는 지금까지 많이 노력하고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지급률 현황을 보면 아직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하므로 더 엄밀하게 원인을 탐색해야 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원인 탐구의 사전 절차로서 의사단체가 직무 확장을 위해 거쳐온 과정을 일별하고, 과거 2000년 이상의 한의학사를 검토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형성되고 사회적 영향력과 함께 발전하며 위기에 대응해 왔는지를 논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현대의학의 전개과정과 비교하면서 한의학계가 한의사의 직무 확장을 위해 취해야 할 구체적인 현재의 전략을 도출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어떤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기술학문의 성장 과정에는 각각의 계기가 있다. 철학이나 물리 화학 등의 자연학 같은 순수학문과 달리, 국가권력에 의한 제도화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특정 지식이나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져서 수요를 창출하거나 거꾸로 사회 변화가 특정 영역의 지식에 관한 수요를 증가시킬 수도 있는데, 이들은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한다.4) 의술을 다루는 의학은 생명과 고통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와 관련되어 사회적 요구가 컸기에 동서양에서 일찍부터 발전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한의학의 형성기부터 최근까지 의학이론의 패러다임을 바꾼 국면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서양의학의 변화 과정을 조사함으로써 양자 간에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특성이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모든 학문은 관련 지식의 체계적 축적이고, 인식 수준과 범위의 확장에 따라 성장하므로 학문은 유기체적 통합의 특성을 갖는다. 어떤 사회적 수요와 문제가 발생하면 지식과 기술 변화에 수반되는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해법의 방향이 달라지고, 국가권력은 평가와 제도적 개입을 통해 특정 학문이 성장하거나 쇠퇴하는 계기를 만든다.
순수학문은 당대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므로 주어진 문제와 해법을 판단하는 패러다임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기술학문은 이 수요에 비례하여 적절한 제도적 보상과 수익을 얻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하며 학문의 발전을 추동한다. 여기서 순수·기술학문은 권력과의 상호 관계에 따라 부침이 일어나게 된다. 동·서의학 역시 시작 단계부터 이런 과정을 지나왔으므로 통합을 추구했던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통합의 현상과 목적 및 방법을 탐색하고, 현시점에서의 해법 도출에 중점을 두었다.
본 론
1. 통합의 개념과 맥락
통합이라는 현상과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사회에서 사용되는 통합의 개념과 맥락에 관해 간단하게라도 정의해야 다의성에서 오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통합의학 개념은 20세기 서양의학에서 시작되고 국내에 도입되어 정책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한의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서양의학계에서도 이론적 통합이 필수라고 주장하지만5) 상세 내용은 한의학계 안팎에서 매우 다양한 찬반 논란이 있으며, 따라서 통합에 관한 포괄적 이해가 필요하다.6)
먼저 현대 의학교육에서의 ‘통합(integration) 커리큘럼’은 1952년 웨스턴리저브대(현 Case Western Reserve Univ.)가 기관계통에 기반한 기초–임상 연계를 표준화하며 출발하였다. 1910년 Flexner report에서 기초한 4년제 의대 학제에서의 전임상교육은 교과목단위로 이루어졌는데 1940년대 이후에는 과목별로 지식의 양이 폭증하여 기초-기초, 기초-임상 연계가 어려워진 것이 원인이었다. 따라서 기초-임상 지식이 연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통합적 의과학 모델(organ system and integrated medical science model)을 설계하여 시행했는데7), 통합된 내용 전달을 위한 교수 사이의 협력이 어려워 1960~70년대 일부에서는 기존의 교과목단위 교육으로 복귀했다고 한다.8) 그러다가 캐나다의 McMaster대학에서 1969년 problem 또는 case 중심교육을 시행하고9), 캘거리대학에서 120개의 임상표현 목록을 중심으로 역량바탕교육과정이 채택됐는데, 국내 여러 의대에서도 이를 부분·변형 도입하여 19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문제중심 ‘통합’교육을 시행하고 있다.10) 이상을 요약하면 최초부터 실험실에서 나온 이론 지식과 임상에서 환자에게 표현되는 증후 현상과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목적과 의도에서 통합의 개념과 방법이 도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학의 의학교육뿐만 아니라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통합의학이 요청되었다. Kathryn11)은 통합의학을 이질적인 최선의 의학(conventional medicine)과 최선의 보완대체의학을 통합·병용하여 더 좋은 효과를 더 안전하게 제공하고 환자와 의사관계를 강조하는 치유지향 의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는 환자의 이익 관점에서 최선의 의학적 선택임을 판단할 수 있는 효과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이것은 서양의학의 진단과 치료 근거가 질병의 인과관계에 관한 실험적·이론적 지식에서 출발하고, 이는 생리학이나 병리학, 약리학 등의 분과별로 차이가 있으며 환자의 실제 상황과도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필연적인 간격(gap)이 존재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 간격에 대해 현대의학의 한계영역인 정신적·심적·사회적·영적 치유 또는 건강증진과 웰빙 부분을 보완대체의학으로 대처하여 환자의 이익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이 통합의학이다.12)
그렇다면 한의학의 교육과 임상에서 마주하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이 본 논문의 직접적인 동기이므로 다른 글의 인용보다는 한의학 입문 40년이 지난 학습자로서의 체험을 진술하고자 한다. 예1에 배우는 한의학개론은 한의학의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데, 예2 생리학은 한 학생을 제외한 150여명이 재시를 쳐야 할 만큼 강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본1 원전은 담당교수마저 “잘 모르겠다”는 고백이 흔했으며, 본3 임상실습에서는 수업 중에 음양오행의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여야 했다. 사실은 같은 용어가 예1부터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같은 오장의 기능 설명이 전공 교수마다 다른 것으로 느꼈는데, 수십 년이 흐른 국가고시 출제 검토위원 경험에서도 반복되어 의견 조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국시에서 특정 용어가 어떤 과목에서 출제됐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정보이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음양오행론으로 장부경락오체의 질병을 해석하여 진단치료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데다, <의학입문>이나 <동의보감>과 같은 전통적인 의서들이 장상론이나 음양오행의 원리를 다루기 때문에 과목 간의 내용 자체가 다르다거나 기초-임상 내용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음양오행과 장부경락의 고유개념을 이해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는 내용과 방식이 부족하거나 모호하고 전공 분야와 담당하는 교수마다 약간씩 다르게 느껴지는 데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고유개념과 현대적 해석의 이질적인 차이를 밝히면서도 이론에 본래 내포된 모순을 통합하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한의학 교육과 임상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한의학은 본래 자연현상 모방이론에서 치료원리가 나오고 임상경험으로부터 이론이 지지되었기에 기초-임상은 순환논리 관계여서 분리 문제는 크지 않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의학교육평가원의 과목 간 수평통합과 기초-임상 수직통합 중심의 통합과목 평가 기준(KAS2022)은 한의학교육보다 서양의학 교육에서 주로 발견되는 문제의식의 반영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한·양의학의 본원적 모순성을 통합하고 일원적 이해 체계를 제공해야 할 교육 자체의 원천적 부실이나 불일치가 우선적인 문제인데, 이를 회피하면 효과적인 과목 통합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교수자가 해결할 문제이긴 하지만, 40년 전 한의학 공부의 문제와 어려움이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개인의 일만도 아니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한의학교육과 임상에서 추구하는 통합의학이란 ‘한의학의 연구와 진료 과정에 기초가 되는 지식체계를 현대사회의 과학적인 요구와 방법에 부응하면서도 임상적 실효성 목표에 충실하게 이질성과 모순성을 종합하여 재구성한 의학’이라 잠정적으로 정의(tentative definition)할 수 있다.
2. 현대의학의 발전 과정과 통합의 맥락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은 기본적으로 구미, 특히 미국에서 정립된 개념이다. 통합은 정의상 둘 이상의 조직, 기구, 요소 등을 합하여 하나의 전체로 만드는 것이다.13)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미국은 유럽에서 들어온 의사면허인 MD와 Andrew Taylor Still이 만든 정골요법(Osteopathy), Daniel David Palmer가 만든 수기요법(Chiropractic), Benedict Lust가 만든 자연요법(Naturopathy) 등이 난립하여 각기 경쟁하는 상태였다. 그러다 1920년대 초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 조직 중심의 의학체계가 제도적으로 득세하게 된 이후로 동종요법과 절충주의 부류는 급격히 쇠퇴하였고, 자연·수기·정골요법 단체들은 MD의 대증약물요법에 대응한 비약물요법을 내세워 연계와 융합을 시도하며 공존하였다.14) 하지만 1930년대 이후 생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독점체계는 강고해져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1980년대와 90년대 들어 이들은 대안의학(alternative medicine)과 보완대체의학(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의학의 범주 안에 도입되기 시작한다.15-18) 특히 의사 출신인 Eisenberg가 1993년 NEJM에서 이들을 unconventional medicine이라 부르다가19) 1998년 JAMA에 ‘대안(Alternative)/보완·대체(CAM)’ 이용이 증가한 것을 보고하며 용어의 변화를 견인하였다.16)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 또는 ‘보완통합’(complementary and integrative)이 되었고, 국내 의과대학에도 논문연구20)와 학회결성이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에서의 치료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 결과21,22)와 적극적 소개23)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무렵에는 대안(alternative)의학이라는 명칭은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미국의 유수대학 종합병원에 보완통합의학진료실이 설치되었고, 그 와중에도 중국은 우선권을 확보하려 노력한다.24) 국내에서도 한의사와 의사가 함께 참여하는 한국통합의학회는 2006년 창립, 의사만의 단체는 2004년 보완대체의학회 창립(2023년 대한임상통합의학회로 명칭 변경), 의료관련직단체인 대한통합의학회는 2012년에 창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5년에는 미국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NCCAM)가 국립보완통합건강센터(NCCIH)로 개명하였으며, 2017년엔 차의대 통합의학대학원 설치, 2018년 국제통합의학박람회, 2019년 한의계에서 통합한의학전문의제도 신청 등 한방과 양방에서 ‘통합의학’ 브랜드를 선점하려는 경쟁적 노력이 전개됐다.
이상에서 통합의학의 간단한 도입 역사를 살펴봤는데, 의학 분야에서의 주도권 확보와 관련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0세기 초에는 주도세력에 대항하는 존속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일단 살아남고 활용할 가치와 위계질서가 확립되면 주도자에 의한 통합과정이 처음에 ‘대안’ ‘unconventional’로 일부 도입, 다음은 ‘보완-대안’이나 ‘보완-대체’로 반 정도 수용, 다음은 ‘보완-통합’으로 대부분, 다음은 ‘통합’으로 완전히 수용하여 자신의 체계 안에 임의로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결국 통합의학이란 이질적인 것을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어서 대안의학이나 CAM과는 의도가 다르다.
사실 이러한 과정은 유기체의 자연스런 성장과 변화 주기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다만 국가마다 역사·문화적 배경과 의료시장의 세력 판도가 달라서 현실은 매우 복잡하며, 통합의학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즉 힘을 이용한 상대 세력으로부터의 탈취 방식으로부터 상호 통섭적 교류와 동반성장을 거친 발전적 통합에 이르기까지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구미와 동아시아 국가인 대만이나 중국과 홍콩 및 한국과 일본에서 주도자(main stream)인 현대의학계가 취하는 태도도 사뭇 다르다. 이들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본고의 취지가 아니기에 다루지는 않지만, 정책당국은 다양한 계층의 건강목표가 복합된 의정제도 결정에 합당한 방법과 수단을 결정하는 절차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3. 통합의 역사로서의 한의학
학문뿐만 아니라 모든 유기체의 성장 과정에서 크고 작은 통합은 늘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의학사를 자세히 기술하려는 목적이 아니므로 漢醫學의 형성기부터 1986년 韓醫學으로 바뀌기 전 東醫學 시기까지의 ‘통합’과 관련된 역사적 국면들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통합이 보편적 특성임을 보이고자 한다.
중국역사학자인 陳直은 춘추전국부터 진한까지의 의학을 秦派와 齊派가 있다 하고 秦派에는 醫緩, 醫和, 醫竘 등이 있으며 鍼灸, 經絡, 病源, 割治 등을 주로 하였고 BC 6~5세기의 脈灸經類가 여기에 해당한다. 1993年 涪翁、李助 等의 활동구역으로 추정되는 四川 綿陽市 雙包山의 西漢墓에서 經脉 木人模型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후에 夏無且, 郭玉 등의 秦蜀人에 전승되었다고 한다.25) 齊派는 BC 5~3세기 무렵으로 俞慎初는 扁鵲 秦越人과 倉公 淳于意가 모두 齊派醫學(主湯藥)에 속한다26)고 하였으며, 何愛華는 더 자세히 이들의 師弟相承 계통과 저작을 밝혔는데, 長桑君(禁方)→扁鵲→子陽、子豹로 이어지고 公孫光(方化陰陽)과 公乘陽慶(黃帝脈書, 扁鵲脈書, 論藥法, 定五味, 和齊湯法)→淳于意→宋邑、高期、王禹 等에게 이어졌으며, 후에 西漢代 216卷의 醫經과 274卷의 經方이 되었다27)고 하였다.
한의학의 이론 지식 방면으로는 商代에 형성된 음양설과 춘추 이래 전국시대까지 형성된 子思와 孟子의 오행설이 한쪽에서 전승되었고, 중국 중원 지역에서는 周의 革命과 함께 神이나 하늘을 믿지 않고 현실적인 武力을 중시했는데 燕齊 지역 해양문화권은 동이족으로 신선사상이 유행하여 老莊의 도가와 양생 및 長生과 不死의 方技를 전공하는 方士들의 약물연구가 전승되었는데 <史記 封禪書>에 燕昭王(前312~284)이 삼신산 탐사대를 보냈다든가 <左傳·昭公二十五年>에 나오는 齊景公과 晏子의 문답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BC 3세기 중엽에 陰陽家인 鄒衍에 이르러 천도의 운행법칙에 관한 음양오행의 主運術數를 人事와 政治에 적용하여 논리를 구축하고 燕나라 方僊道의 신선의약방술을 더 긴밀하게 결합하였으며 직하학궁에서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이러한 유풍은 한편으로 진시황과 한무제가 신선방사의 방술에 빠져 국사를 망칠 만큼 큰 영향을 미쳤지만, 巫祝에서 탈피한 의사들은 扁鵲 이래로 信巫不信醫를 경계하였고, 삶을 중심으로 천문과 인사와 인문지식을 통합한 <管子>의 거대이론을 바탕으로 침구경맥과 맥진분야 지식을 통합한 <黃帝內經> 계열의 黃老醫學派를 형성하였다.28-30) 이것이 <내경>에 담긴 인체의 五臟六腑 三陰三陽 經絡鍼灸와 湯液酒醪 등 생리 병리 진단 치료이론들이 하나의 체계로 통합된 과정이며, 후대에 이 이론은 치료방법과 처방을 연역하는 원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보면 초기에는 공간적으로 멀어 지세와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진파와 제파가 일정 기간 공존하다가 정치·사회적 변화를 따라 齊派에 의해 뜸과 침과 약물과 맥진 등의 이질적이었던 임상지식이 천문과 지리 등의 보편 원리에 통합되면서 점차 체계화된 이론으로서 한대에 정리된 것이 한의학의 원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초기 한의학은 醫緩과 醫和 그리고 <足臂十一脈灸經> 등의 시기부터 <黃帝內經> 성립기까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500년 정도의 오랜 교섭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의학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한 張機가 撰한 <상한잡병론>은 고대 한의학이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나 추상적 원리를 벗어나 실제 전염병 유행 상황에서 의학 고전과 경험방서들을 모으고 맥법과 변증기술을 결합하여 치료했던 과정에서 완성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31)그 서문에는 <素問>과 <九卷>, <難經> 등의 의경가와 扁鵲系 서적뿐만 아니라 <胎驢> <藥錄>과 같은 경방가와 본초류의 서적 및 맥법과 변증 등의 제파의학과 142、292、304、308조(宋本)와 같은 針法과 灸法 지식이 기원한 진파의학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의경가와 경방가는, 전한 成帝(BC 51~7년) 때 劉向으로 하여금 전면적인 도서교정과 분류・해제 작업을 하여 《別錄》(BC 26년)을 간행하면서 御醫인 李柱国이 方技 부분을 맡아 醫經七家 二百十六卷과 經方十家二百七十四卷 및 神仙家(養生)를 교정하였다는 기록에 근거하면 공존하거나 대립되던 의학 유파임을 알 수 있다. 이는 劉向이 죽고 나서 아들인 劉歆이 계승하여 완성한 《七略》(BC 5년) 중의 方技略에 실렸던 내용인데 王莽의 亂中에 망실되었다가 《漢書 藝文志》(24년 일까지 기록, 82년 발간)에 기록되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중경이 두 유파의 사적을 동시에 선용하여 “~病脈證幷治”의 편명을 붙였다는 것은 전형적인 통합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런데 의경가와 경방가에 대한 班固의 정의를 보면 “醫經家(者)는 人體의 血脈、經絡、骨髓、陰陽、表裏를 탐색하여 百病의 根本과 死生이 갈라지는 까닭을 도출함으로써 箴(鍼)石과 湯火를 시술할 방법을 헤아리고 약물과 方劑의 마땅한 사용법을 갖추어서 가장 적합한 처방(至齊)을 얻음이⋯”라 하였고, “經方家는 本草와 金石의 寒溫에 기초하여 疾病의 淺深을 헤아리고 藥味의 滋養을 빌어 두 氣의 感應함이 적합하게 하되 五苦와 六辛을 감별하여 水火의 方劑를 만들어서 閉結된 것을 通하고 풀어 平和를 회복케 한다.⋯”(《漢書 藝文志 方技略》) 라고 하여 醫經家도 침석과 탕약을 결합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經方家도 질병과 장부에 대한 지식이 포함하고 있어서 완전히 고립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현대의 醫史學者인 范行准에 의하면, 仲景이 거주하던 당시의 荊州 地方은 東北 地方에서 亂을 피하여 온 사람들에 의해 대량의 서적들이 의서와 함께 반입되었고 학풍도 자유로웠기 때문에 仲景은 齊派醫學(經方)과 荊州醫學(醫經)을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32)고 한다. 또한 《內經》에 실제 사용되었던 구체적인 湯液名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湯液, 丸, 酒, 醪醴, 湯熨 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의 經學者인 楊紹伊(1888~1948)는 중경을 <針灸甲乙經> 서문이나 왕호고의 <湯液本草> 서문 등의 여러 증거를 들어 탕액가라 주장하고는 있지만, 《傷寒雜病論 序》에서 “精究方術”이라거나 “保身長全 以養其生” 등의 말을 사용한 것을 보면 仲景의 학술연원이 결코 단순한 湯液家 系列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근거가 된다고 하겠다.
요컨대 중경의 상한잡병론은 <한서 예문지>에 전하는 의경가와 경방가, 진파와 제파, 경맥침구와 색맥진단 지식이 각기 여러 경로를 거쳐 성장한 이질적인 성분들이었지만, 상한병 치료과정에서 이론적으로 통합되어 질병의 개념과 인체에서의 전변 과정, 변증논치의 구체적 방법론과 실례, 처방 선정과 탕전 및 복용방법 등이 임상 전 과정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된 범례(exemplar, term of Kuhn)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의 영토 개념으로 중국이 문물을 외국과 교류한 것은 의사학에서 서한의 張騫(BC138~ 115)과 동한의 班超가 서역 길을 열고 수당대에 의학적 교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손사막은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에 정통하여 불살생과 자비심 등을 의학에 통합하였으며, 藺道人은 출가한 승려로서 골상과에 정통하여 <理傷續斷方>을 남겨 후대 한의학에 중요한 자산을 만들었다. 또 永徽연간(650~655)에는 아랍에서 유향, 몰약, 단향, 혈갈, 목향 등이 들어왔고 659년에는 <新修本草>가 편찬되면서 용뇌, 안식향, 울금 등의 약물이 본초학에 통합되어 현재까지 임상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31) 이러한 문물교류를 통한 이질적인 지식과 치료방법의 통합은 그 후로도 지속되어 송대 唐愼微의 <經史證類備急本草>는 불교서적과 道藏에 나오는 약재들과 민간의 경험방을 종합하였고, 뒤이은 <寇宗奭의 <本草衍義>에서는 재배 및 임상경험과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약효를 기술하였다.31)
宋代에는 군사용 화약과 항해용 나침반이 개발되어 실크로드와 몽골의 원정로를 따라 교류되고 인쇄술과 농업 발달로 성리학이 진흥되면서 기존 유학의 본성론에 우주론을 통합하고(<太極圖說>) 불교와 도학의 이론까지 종합하였다.33,34) 이들의 학문방법이 ‘格物窮理’하여 ‘致知’하는 格致學인데 이는 과학적 탐구에 의한 지식 형성방법과 대응한다. 의학분야에서는 교정의서국에서 여러 경전과 주석, 본초 방제 침구서 등의 표준서가 발간되고, 儒醫가 늘면서 <내경>의 생리병리이론으로 <상한론>의 병증과 처방을 해석하는 ‘以經注經’방식의 통합이 시도되었으며, 朱丹溪는 《格致餘論》의 상화론, 허화론, 양유여음부족론, 鬱論 등을 통해 용어의 개념과 차이를 명확히 하고 개별질환에 구체적인 格物致知 방법을 적용하여 변증논치하는 범례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성과들은 결국 한의 임상의 이론과 技術의 범위를 크게 확대·통합하고 과학적인 관찰 방법의 축적으로 이어져 송과 금·원의 대치 과정에서 남·북의학이 갈라지면서 四大家들이 지역성을 반영하는 독자적 임상 체계를 구성하였다.31 후에 명청대 의가들은 상호 논쟁을 거치면서 다시 변증논치 체계를 통합하고 치료 수준을 높여 時方派 형성의 원천이 되었고,35) 동시에 서양과학과 의학의 유입 시기에 독자적으로 소화하여 회통할 수 있는 의학적 역량을 길렀다.
명대(1368~1644)는 처음으로 서양의 종교교리와 과학기술 문물이 마테오 리치(1522~1610, 西國紀法)、요아네스 테렌쯔(1576~1630, 泰西人身說槪, 人身圖說) 등의 선교사를 통하여 들어오는 시기로서36) 의학분야에서는 해부학과 생리학 지식이 수입되어 明의 李時珍2), 명말청초의 汪昻3), 18세기 王淸任 등의 腦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또 상한병과 온병에 관한 인식의 누적은 명말청초의 장기간에 걸친 감염병의 유행 상황에서 기존의 傷寒經方派와 溫病時方派가 경쟁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진단 치료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 두 흐름은 20세기 중후반에 외감열성병 관점에서 高熱과 厥脫症 등을 현대의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진단과 치법을 통합하는 萬友生의 寒溫統一論으로 이어졌다. 더 넓게는 王清任의 해부학적 실사구시 결과인 《醫林改錯》37), 唐宗海와 張錫純 등의 중서의회통, 惲鐵樵의 서의를 종합한 중의혁신론, 陸淵雷와 施今黙 등의 중의과학화 등이 西勢東漸과 중의폐지론에 대항하는 학문적 해법으로 제시되었고 현대의 중의학과 국가제도로 이어졌다. 다만 개별 이론적 대응과 회통은 아직 爭論이 많고 진행 중이어서 실질적인 통합에는 이르지 못하였다.38-40)
만약 본고가 의사학 논문이라면 사건별로 논증하기 위한 근거자료가 상세히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의학의 발전과 외부 세력의 도전에 대한 응전은 부단한 통합의 과정 자체이고 중의학에서도 그와 다르지 않았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의사학적 사실들을 수집하여 논지에 맞게 개괄적으로 재기술하였다. 다음으로 한국의 사례를 검토한다.
한국 韓醫學의 학문적 교류와 통합의 의학사는 고려에서 원의 지배기가 끝나고 조선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다. 내부에서는 향약의 연구를 통하여 대체약물과 효능에 관한 고려의학의 가능성을 얻었고, 조선 초 의학이론과 방서의 수입 및 대대적 간행을 통하여 16세기 말까지 2~300여 년의 三敎蘊蓄을 거치면서41) ‘東醫’라는 독창적 의약체계로 통합되었다.(東醫寶鑑 集例)42) 독자적 통합의 계기는 국내 상황에 맞추기 위한 의약기술과 처방 응용에서 시작하여 근본적으로 금원의학의 異論들을 종합하면서도 예방·양생과 유불도가적 생명관을 기초로 한 심신일원의학과 정기신 삼보 중심의 생활의학을 지향한 데 있다.43,44)
그런데 의학이 이처럼 병과 건강에 대한 인문학적 인식과 사회적 삶을 포괄하는 인간의 전체 영역을 통합하는 반면으로, 17세기 이후 서양에서 들어온 의학과 천문학 분야의 지식들은 의학서에 거의 도입되지 못하였다. 이는 위에서 서술한 중서의회통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특징이다. 왜냐하면 당대의 실학파인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45)이나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46)에서는 아담 샬(1591~1666)이 번안한 <主制群徵>(1629)에 등장하는 생리학설이나 해부학설을 나름대로 소개하면서47) 비평하기라도 하였는데, 접촉 초기부터 강명길과 황도연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의사들은 대부분 다루지 않고 있다. 심지어 외국 문물에 밝았던 한의사 劉鴻基조차도 서양의학설에 관해서는 별로 주목한 것이 없다. 천주교가 수입되던 당시에 정약용과 최한기가 알았던 것처럼 한의들에게도 최소한 서양의학의 존재는 알려졌을 것이지만, 188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지석영이 서양의 종두술에 주목하게 된다. 이것은 중국에서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활동한 王淸任이 <主制群徵>에 등장하는 “腦以散動覺之氣 厥用在筋”의 개념을 <醫林改錯>(1830)에 그림과 함께 腦氣筋으로 표현하여 자신의 瘀血이론을 적극적으로 변증하려 했던 사실과는 크게 대조된다.
대신 1900년에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에서 중국에서 전해온 漢醫學이나 <동의보감>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룬 부분인 사회생활 영역에서의 발병 요인들도 개별 인체의 삶에 연관시키고 처방과 약물에도 확장하여 天地人物, 心身, 양생과 치병 즉 건강과 질병의 이질적 범주들을 사상의학으로 통합하였다. 이것은 통합의 방법과 주제가 특정 국가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보건학적 요구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여기에 특정 개별의학이 독창적 가치를 가지며 발전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이것은 헤겔이 말한 보편과 특수의 통일을 거쳐 개별로 완성되는 변증법적 발전과정의 패턴48)이기도 하다.
그러나 1905년 東醫가 광제원에서 추방되고 1913년 기존 醫士規 則과 별도로 醫生規則을 만들어 동의는 醫生으로 격하되고 그마저도 교육을 통한 양성이 폐지되었으며, 東醫는 일본식 용어인 漢醫나 漢方醫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34년에 조선일보 지상에서 조헌영과 이을호, 장기무 등의 한의부흥론과 洋醫인 정근양의 반대론으로 나뉘어 한방의학 동서절충론49)이 있었고, 이후 40년대 초까지 동아일보, 중앙일보, 신동아 등에 ‘종합의학’, ‘신의학’ 등의 이름으로 한의학 내부에서 동서의학을 통합할 수 있다는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였다.50)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학문적 자각은 해방 후 윤길영과 김완희 등에 의한 객관화, 과학화, 한양방병명통일 등을 추구하는 제3의학으로 이어졌다.51) 그러나 중국과 다르게 50여 년간 제도적으로 헤게모니가 확고해진 양의의 적극적인 반대로 인해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론적 통합은 고사하고 사회에 폭넓게 수용되지 못하였고, 의학적 교류뿐만 아니라 내부의 자생적인 통합 노력도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고 찰
한국의 한의학은 1949년 한의사제도 복원까지 40년 간의 역사적 단절을 겪고, 그 후 현재까지 자본주의의 숙명인 사회경제적 지배권(hegemony) 경쟁에서 양의와 비교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986년에는 일제강점기에 단절됐던 한의학의 학술 전통과 독자성을 계승하기 위해 韓醫學으로 개명하고 다음 해 전국민한방의료보험이 실시되었으며 현재 12개의 한의과대학과 ‘2023 한국한의약연감’ 기준 28,214명52)의 한의사가 배출됐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80년대의 세포 및 동물실험, 90년대 이후의 분자생물학적 연구와 2010년대 이후의 특정 질환에 대한 침과 한약의 효능 및 기전 연구, 임상 분야에서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사업,53) 교육 분야에서 2010년부터 하는 한의대인증평가사업도 모두 제도적 안착에 목적이 있다. 이것은 과학화와 표준화를 위한 내적 요구54)이면서 동시에 제도 설계자인 정부55)와 소비자의 요구56)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의학은 연구와 임상 및 교육의 모든 영역에서 현대의학과의 소통 및 통계적 효과 입증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런 다방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57) 건강·실손·자동차 보험에서 아직 소외된 부분이 많으며, 제도적 차등이 지속되면서 현대의학과의 사회적 비중과 편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난국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익집단 간의 경쟁인 데다 상대방의 독점적이었던 권한을 양보하도록 요구하며 정책적으로 선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건 당국에 한의학의 효과성을 타당하게 주장하고 주변 사회와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의학의 사회적 지분 확대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를 분석하여 최종의 대책을 결정하는 방법은 다양하기에 정부나 경쟁 단체와 협상하려면 내부 구성원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간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중서의회통, 중서의결합, 신의학, 제3의학 등 여러 명칭으로의 통합이 시도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십 년간 과학화·표준화·산업화를 표방했던 것이 처음부터 해법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각각의 방법론과 컨텐츠가 문제였는지, 아니면 더 근본적이고 다른 영역의 문제였는지 등에 관해서 하나씩 검토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한의학 자체의 한계에 따른 자연도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의학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과거에는 어떤 방식으로 외부 혹은 주변의학과 접촉하면서 발전해 왔는지를 검토하였다. 왜냐하면 서양의학 기초이론을 한의학교육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두 의학체계는 인식론과 방법론이 달라 공약불가능(incommensurability)하므로 그런 교육이 무리58)라고 비판하거나, 한의학의 인식 방법과 논리를 은유 체계로 이해하자는 주장59)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논리라면 현대의학을 학습하지 말아야 하고, 후자는 한의대 교육 현실을 전혀 바꾸지 못한다. 이처럼 양자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교육하고 연구체계를 수립할 것인지는 아직 성공적인 대안이 없으며,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합의에 도달하려는 공동의 노력도 없었기에 합의를 위한 논리와 여건을 도출하였다.
먼저 한의대에서 필요한 통합은 의과대학의 통합교육이나 통합의학과 맥락이 전혀 달랐다. 그들의 통합교육은 의학 분과 간(기초-기초, 기초-임상) 지식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그 방법이 문제기반학습(PBL)이며, 그들의 통합의학은 의학적 치료 효과가 균질하지 않아서 효과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근거중심의학이 등장했고, 치료 효과가 미진한 부분을 보완·대체·혼용하기 위해서 아시아 전통의학을 치료도구나 수단만 필요에 따라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즉 현대의학은 한의학 자체를 알거나 이론적으로 통합하려는 의도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의학이 직면한 핵심 문제는 단순히 분과 학문 간의 지식 격차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한의학 내부에서 통용될 수 있는 표준화된 해석 체계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현대의학적 설명 틀을 통과하지 않으면 정부와 사회로부터 제도적·과학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현실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두 의학의 임무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든다. 현대의학에서는 특정 질병에 효과적인 기술이나 치료 도구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실용적 해결이 가능하다. 반면 한의학은 그 존재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현대의학의 이론·방법론을 이해하고 이를 한의학적 개념과 연결하여 단일한 해석·운용 체계로 재구성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의학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두 의학 체계를 이론적·방법론적으로 통합(integration) 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며, 이는 사전적 의미의 ‘통합’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은 단순한 기술의 차용이 아니라 패러다임 간 조율이 필요하기에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실제로 이러한 통합의 과정은 한의학사에서 여러 국면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첫째로 한의학은 역사적으로 漢代에 형성되었는데, 그 원류는 진파와 제파가 공간적으로 멀어 지세와 문화와 지식의 종류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일정 기간 공존하다가 정치·사회적 변화를 따라 齊派에 의해 뜸과 침과 경락과 장상과 맥진 등의 임상지식이 천문지리를 포괄하는 보편 원리에 통합되면서 점차 체계화된 것이 <황제내경> 중심 의학이다. <漢書 藝文志>에 의하면 漢代 이전에 의경학파와 경방학파가 나뉘어 있었는데, 醫經家는 또한 秦派와 齊派의학의 종합이고 秦派는 경맥폄침과 病源의 종합이며, 齊派는 扁鵲과 淳于意를 대표로 하는 진단 특히 맥진과 병증 지식의 결합이다.60,61)
둘째로 經方은 《五藏六府痹十二病方》 등의 病方과 湯液을 주로 하며, <甲乙經> 서문에 의하면 湯液을 論廣한 經方家에 속하는 仲景은 <傷寒雜病論>에서 “脈證幷治”의 진료방법, 즉 經方을 맥진과 병증지식 및 鍼灸치법과 결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의사학에서는 張仲景이 두 학파의 장점을 종합하여 변증논치 이론을 확립62)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그 후 현재까지 《상한론》에 포함된 많은 범례(exemplar)들 즉 이법방약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임상 범위가 계속 확장되는 것으로 보아 의경과 경방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결과로 간주한다. 이상에서 첫째 과정에는 방법론적으로 유비와 유추법이 주로 사용되어 크게 보아 은유의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과정은 주로 경험 지식에 근거하나 진단 치료에서 음양 판별에 부분적으로 은유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셋째로 동서양회통의학사의 관점에서 前漢代 서역 교통을 개시한 이후 외부의 많은 약재와 서적과 심지어 종교도 수입되었는데, 한의학은 자신의 세계 해석 및 약물 분석의 논리로 이해하여 치료와 처방에 활용하였다. 송금원대에는 형이상학적인 본성론과 우주론에 불교와 도가이론이 통합된 성리학을 의학이론에 반영하고 以經注經의 방식으로 《내경》과 《상한론》을 통합하였으며,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의학유파가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명대에 다시 한의학의 변증논치체계에 서로 달라진 논리들이 해명되고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명대 후기에 수입된 서양과학과 의학이론들은 汪昻처럼 일부 채용하거나 청대에 王淸任 張錫純 唐宗海 등과 같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나 체계 안에 흡수하지는 못하였고 회통하는 방법에 차이를 노정하였다.
중국의 季偉蘋63)은 中西醫匯通의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누는데, 여기서는 이와 함께 역사학자인 陶飛亞64)의 기술을 참고하여 네 시기로 요약한다. 먼저 1582년부터 1805년까지의 서양의학 진입기로 汪昂의 《本草備要》、趙學敏의 《本草綱目拾遺》、王學權의 《重慶堂隨筆》 等에 약간씩 반영되기 시작하는 단계, 1805년부터 1892년의 중서의회통 초창기로 우두법과 약학·화학·세포병리학·세균학·위생학 등의 수입과 함께 洋務운동이 일어나면서 학습과 해외유학이 늘어나 기존 의약학 이론의 수정과 확장 및 洋學과의 회통이 시도되는 단계, 1892년부터 1949년까지의 회통 확대기로 서양 외세에 의한 피지배와 함께 중의 내부에서 중의과학화·중서의회통 요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실험중의(張錫純)·以西補中(惲鐵樵)·新中醫(陸淵雷 祝味菊 丁福保) 슬로건과 목표가 정립되는 단계,65) 1949년부터 현재까지의 제도적 중서의 결합기로 과학화와 회통작업이 학문적·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세계 전통의학 시장으로 확장하는 단계이다. 이는 中醫가 정치·사회적 권력과 제도 내부로의 포섭을 위한 인식론적 통합과 연구방법론의 통일에 지속적으로 매진해 왔음을 보여준다.
넷째로 조선에서는 금원의학의 異論들과 함께 유불도가적 예방·양생의 생명관과 고려부터 전승된 향약지식을 종합하고 실제 사회생활에서의 질병현상을 기초로 한 심신일원의학으로 통합하여 독자적인 東醫를 제창하였다. 이때의 방법론은 전통적인 유비와 유추가 더욱 강화되었고 은유체계와 象사유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흐름은 조선 말의 이제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서양의 과학과 의학지식은 거의 수용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당시 지배적이었던 소중화사상과 위정척사 운동 등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어쨌든 이후 일제강점기에 학문의 전승이 단절되자 독자적인 통합 역량은 더욱 쇠퇴하면서 해방 후 현재까지 효과적인 통합방법뿐만 아니라 전략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으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학의 역사는 새로운 대상 세계와 지식 및 세계관을 만나 차이가 생기면 이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지식의 주도권과 영역을 확장하면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인식론의 확장적 통합으로 연관 지식을 결합하고 상관관계를 체계화하여 더 효과적이고 통합된 이론과 임상학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통합은 의학의 본질적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작업이며, 더구나 지금과 같은 타당성 증명 작업에는 한의학 이론의 현대적 재구성과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지식 생산이 불가결하다. 이와 반대로 만일 한의학이론을 현대에도 은유체계나 象사유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는 지금까지의 한의학과 동일하여 새로운 결과를 만들거나 학문의 발전을 추동할 수가 없다.
실용학문인 의학은 특히 이익을 두고 경쟁하는 직역 단체가 있으며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영역이 있고, 더구나 상대가 정치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면 객관적인 평가나 토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한의약산업에 대한 제도적 규제로 이어져 혁신을 저해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66) 의료법 제2조에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하여 ‘한방’이라는 족쇄가 의권확대에 항상 문제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2010. 7. 29. 선고된 2008헌가19 결정>과 <2003. 2. 27. 선고된 2002헌바23 결정> 등에서, 『의료법의 입법목적, 의료인의 사명에 관한 의료법상의 여러 규정들과 한방의료행위에 관련된 법령의 변천 과정 등에 비추어 보면, ‘한방의료행위’는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라 하여 소극적 의미로 제한하고 있는데,67) 이는 2003년 제정된 한의약육성법 제2조 제1호의 “한의약이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韓醫學)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韓藥事)를 말한다.” 라는 조문에 근거한 판단이다. 다행히 2022년 초음파진단기 사용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였는데,68) 그 요지는 “의료인에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의료행위 관련 법령의 규정과 취지는 물론 의료행위의 가변성, 그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및 과학기술의 발전과 응용 영역의 확대, 관련 교육과정과 국가시험 기타 사회적 제도의 변화⋯등을 감안하여 종전 판단기준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69) 이 판결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것은 “원리”이다.
이러한 사법부의 논리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한방의료행위의 의미와 치료기전인 원리가 실제로는 현대의학의 의료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단지 시대적으로 달라지는 인식론과 관점, 용어, 당대에 사용되는 도구와 수단이 다른 것뿐이고, 관점의 차이에 따라 현대의학이 놓치는 현상을 볼 수도 있음을 밝혀야 한다. 이는 법학에서의 목적론적 법리 해석에 충실한 판결 원칙을 따른 것이다. 이제 의료행위의 본질과 현상적 의미가 연속적이고 동질적임을 밝히려면 필연적으로 대응하는 이론과 용어 및 개념을 정의하는 작업이 필수이고,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서도 역시 그러하다.70) 이러한 작업은 인식론부터 수단에 이르는 광범한 영역을 포괄하며 평가에 따른 논쟁을 내포하기에 통합에 대한 목표와 연구 방법에 관한 한의계 구성원 다수의 합의와 공유가 필수적이다. 이 합의를 위해서는 한의학 이론을 구체적으로 통합하는 예제와 방법이 필요한데, 이에 관해서는 별도의 상세하고 전문적인 논술이 필요하다.
결 론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학문과 의술을 발전시키고 조직의 직무를 확장한 과정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현재에 이르렀는지 통합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를 통해 현재 한의계의 직무 확장을 위해 취해야 할 현재의 전략을 도출하였다.
현대의학에서 통합적 의학교육은 기초과목 간 혹은 기초와 임상 간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방법이고, 통합의학은 의학적 치료 효과가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기원이 다른 의학이나 치료법을 보완·대체·혼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임시도구적 개념이다. 그러나 한의학계에서는 통용되는 기초이론의 표준해석 부재와 현대의학적 이해 방법의 부재가 핵심이어서 통합의 지향점이 다르므로 대학에서 통합교육의 목표와 방법에 관한 세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또한 한의학의 역사에서 초기 《황제내경》과 《상한잡병론》의 형성에는 이질적인 의학체계의 통합이 있었으며, 서역과의 교통이 시작된 이후 아랍의 약재가 한당송을 거치면서 본초학 속에 통합되었고, 본성론과 우주론을 통합한 성리학은 주단계에 의해 의학 속에 보편원리로서 통합되어 이론 전개에 格致의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명대에는 서양의 과학과 의학이론이 수입되면서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학회통을 위한 장기간의 노력이 있어왔고 중서의결합이라는 결과를 도출하였다면, 조선에서는 중국과 달리 유불도교적 수양과 기거예방을 의학적으로 통합하는 데 중심을 두고 해방기까지 서양에서 들어온 의학에 관해서는 거의 비교분석이 부재하였다. 따라서 한의학 이론교육의 표준 해석과 현대의학적 의미 소통, 韓醫權의 확대를 위한 정부와 법원의 “한방의료행위” 판별 요소인 ‘학문적 원리’의 확장을 위해서는 현대의학의 진단과 치료 원리를 한의학 체계 속에 통합해야 한다는 목표 설정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향후 이러한 구성원들의 명확한 목표 인지와 공유는 과학화와 표준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여 제도적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Notes
References
- Lee CH, Korean medicine in critical situation, KBS News 9, 2009. 1. 2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1711307, Accessed at 7. 25.
- Lee JH, Korean medicine’s crisis, Even Kyunghee medical center is downsizing, The Korea Economy Daily, 2016. 7. 18.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6071840131, Accessed at 7. 25.
- Kang HW, Reviewed medical expenses for Korean traditional medicine in the past year, AKOM News, 2024. 11. 29.
- Jang SH, Learning and Education(1st Vol): What is learning? SNU Publishing, 1997:614, 622-3.
-
Yoo YS, Traditional Oriental Medicine and Integrative Medicine, Hanyang Med Rev 2010;30(2):142-7.
[https://doi.org/10.7599/hmr.2010.30.2.142]
-
Kim KJ, Jeon HJ, Ko SJ, Cha JM, Park JW, Perception Difference between Korean Medicine Doctors, Western Medicine Doctors, and Patients on the Collaborative and Integrated Medicine for the Functional Dyspepsia, J. Int. Korean Med. 2021;42(6):1285-1302.
[https://doi.org/10.22246/jikm.2021.42.6.1285]
-
Ham TH. Medical Education at Western Reserve University - A Progress Report for the Sixteen Years 1946-1962, N Engl J Med 1962;267:868-74.
[https://doi.org/10.1056/NEJM196210252671707]
-
Chi GY, Preliminary Regulations for Effective Implementation of Integrative Education in Korean Medicine College, J Physiol & Pathol Korean Med 2023;37(5):93-9.
[https://doi.org/10.15188/kjopp.2023.10.37.5.93]
-
Barrows HS. Problem-based learning in medicine and beyond: A brief overview. New Directions for Teaching and Learning. 1996;68:3-12.
[https://doi.org/10.1002/tl.37219966804]
-
Rhee BD, Park HK, The Process of Developing a Clinical Presentation Curriculum, Hanyang Medical Reviews 2012;32(1):8-16.
[https://doi.org/10.7599/hmr.2012.32.1.8]
- Berndtson K.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Integrative medicine: Business risks and opportunities. Physician Exec. 1998;24(6):22-5
-
Lee SJ, The Role of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in Integrative Medicine, Hanyang Medical Reviews, 2010;30(2):75-83.
[https://doi.org/10.7599/hmr.2010.30.2.75]
-
Chi GY, Preliminary Regulations for Effective Implementation of Integrative Education in Korean Medicine College, J Physiol & Pathol Korean Med 2023;37(5):93-9.
[https://doi.org/10.15188/kjopp.2023.10.37.5.93]
- Cody GW. The Origins of Integrative Medicine-The First True Integrators: The Philosophy of Early Practitioners. Integr Med 2018;17(2):16-8.
- Anderson E, Anderson P, General practitioners and alternative medicine, J Royal College of General Practitioners 1987;37(295):52-5.
-
Eisenberg DM, Davis RB, Ettner SL et al., Trends in Alternative Medicine Use in the United States, 1990-1997: Results of a Follow-up National Survey, JAMA 1998;280(18):1569-75.
[https://doi.org/10.1001/jama.280.18.1569]
- Defining and describing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Panel on Definition and Description, CAM Research Methodology Conference, April 1995. Altern Ther Health Med. 1997 Mar;3(2):49-57.
-
Wetzel MS, Eisenberg DM, Kaptchuk TJ. Courses involving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at US medical schools. JAMA 1998;280:784-87.
[https://doi.org/10.1001/jama.280.9.784]
-
Eisenberg DM, Kessler RC, Foster C et al. Unconventional medicine in the United States. N Engl J Med 1993;328:246-52.
[https://doi.org/10.1056/NEJM199301283280406]
-
Chang BH,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 Education and Medical Students' Attitudes toward CAM, Hanyang Medical Reviews 2010;30(2):136-41.
[https://doi.org/10.7599/hmr.2010.30.2.136]
-
Ernst E. A systematic review of systematic reviews of homeopathy. Br J Clin Pharmacol. 2002;54(6):577-82.
[https://doi.org/10.1046/j.1365-2125.2002.01699.x]
-
Gorski DH. Integrative oncology: really the best of both worlds? Nat Rev Cancer. 2014;14(10).
[https://doi.org/10.1038/nrc3822]
-
Robotin MC, Penman AG. Integrating complementary therapies into mainstream cancer care: which way forward? Med J Aust. 2006;185(7):377-9.
[https://doi.org/10.5694/j.1326-5377.2006.tb00614.x]
-
Dobos G, Tao I, The model of western integrative medicine: The role of Chinese medicine. Chin J Integr Med 2011;17:11-20.
[https://doi.org/10.1007/s11655-011-0601-x]
- Chen Z, Ancient medical texts discovered among imperial seal wooden slips, The Chinese Journal of History of Science, 1958;1.
- Yu SC, Brief Histor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FuJianKeQi Publishing, 1983:56-7.
- He AH, Brief discussion on Qi School medicine, Guanzi Journal, 1990:76-8.
- Park HA, Kim SJ, Jeong CH, Jang WC, Baik YS. A study on the correlation of political philoshphy in “Guanja(管子)” with the united thought in “Huangjenaegyeong.” Journal of Korean Medical classics. 2012;25;25(1):141-61.
- Kim SH, A Study of HwangLaoDao-the origin of thought and the genealogy of the spirit of the times, Journal of the Studies of Taoism and Culture, 2007;27:33-72.
- Kim SH, Fantasy of Mt. Samsin and Cultural Exchange in Ancient East Asia, The Journal of Chinese Studies, 2007;56:443-68.
- Kim KW, Kim NI, Kim DH et al, Lecture; Histor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Daesungeuihag Publishing, 2006:73-78, 145-151, 166-7, 193-231.
- Fan XZ, Concise Histor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Old Archive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Publishing, 1986:44.
- Kim KS, Synthesis theory of 3 teachings in the early North Sung era, Yemoonseowon, 2013.
-
Kim SC, In Sung Dynasty, mutual negotiation and penetration between the cultivation of Confucianism and the practice of Buddhism and the training of Taoism, J East-asia Buddhism & Culture, 2023;56:291-320.
[https://doi.org/10.21718/EABC.2023.56.11]
- Tony Reid, The Four Great Schools of TCM in the Jin-Yuan dynastic period, TCM Online Course 2018:1.https://chinesemedicineeducation.com/wp-content/uploads/2018/03/APPENDIX-2.pdf, Accessed at 2025. 10. 10.
- Kim KW, Kim NI, Kim DH et al, Lecture; Histor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Daesungeuihag Publishing, 2006:278.
- LANG Dong, YAN Jin-hai, HUANG Yi, From being Questioned to being Marginalized, Then being Denied: The History Path of Declination of Modern Traditional Chinese Mediine, Medicine and Philosophy (Humanistic & Social Medicine Ed.), 2011:32(9):70-2.
- HUANG Li-xing, Thought on Scientificity and Future Trend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Medicine and Philosophy (Humanistic & Social Mecicine Ed.), 2011;32(11):66-7.
- Lei SQ, Si YC, Huang JG, Multi-disciplinary Study on Nei-Jing, JiangSuKeQi Publishing, 1990.
- Wu W, The Way of Heaven, the Way of Earth, the Way of Human: A Standard Thought of the Scientific Nature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XueYuan Publishing, 2010.
- Lee JW, Kim GC, Lee HW, About the Meditation and Self-discipline in Korean Medicine through Donguibogam, J. Oriental Medical Classics 2012:25(3)149-58.
- Heo J, Donguibogam, Namsandang, Seoul, 1981:69.
- Kang MK, The study in the perspective on life of Dongeuibogam, Master’s Thesis, Seoul National University, 2016:ⅰ-ⅱ.
- Sung HJ, Body and Soul mentioned in Donguibogam, Contemporary Eastern Thoughts, 2009(20):127-43.
- Ahn YS, Studies on Sung Ho's school in the process of fusion and conflict between Western and Eastern culture, Korean Cultural Studies, 2004;41:489-529.
-
Park SY, Study on the Medical Information of OhjuYeonmunJangjeonSango, J Kor Med History 2015;28(2):97-103.
[https://doi.org/10.15521/jkmh.2015.28.2.097]
- Yeo IS, Zhuzhiqunzheng (主制群徵), the Jesuit translation of Western medicine and its influence on Korean and Chinese intellectuals, Korean J Med Hist, 2012;21:251-78.
- Kang SJ, Hegel’s conception of particularity – Dialectic of Universal, Particular and Individual, SJP, 2021;64:67-94.
- Park YJ, Jo Heonyeong’s Understanding of and Vision for the Future of Korean Traditional Medicine in the 1930-1940’s, 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2007;40:118-41.
- Cho HY et al., Criticism and explanation on Han medicine, Sonamu Publisher, 1997.
- Objectification of Korean medicine and the unification of disease nomenclature between eastern and western medicine, J. Assoc. Neomed, 1996;1(2):1-14.
- Kang HW, The main current state of the Korean medicine industry as seen through the 2023 Korean Medicine Yearbook ②, AKOM News, 2025. 6. 30. Accessed at 2025. 10. 8.
- Kim JY, Lim SH, Kwon SH, Hong JG, Press References, Report on Korean mdicine CPG development project, NIKOM, 20220510:1-3.
- Yoo SJ, Policy suggestions for advancing R&D in Korean medicine and revitalizing that industry, Kistep R&D Focus, 2008(4):18.
- Team of Oriental Medicine and Industry,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Mid to long-term incubation and development plan for oriental medicine R&D 2008-2017, MOHW 2008:ⅴ.
- Citizens United for Consumer Sovereignty, Report on the National Assembly debate on the guarantee of Korean medicine unpaid accident health insurance for treatment purposes, 2025. 5. 15. http://cucs.or.kr/?p=17576, Accessed at 2025. 10. 8.
- Kang HW, Total investment in Korean medicine R&D is 134.2 billion won, AKOM News, 2025. 8. 18, 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64016, Accessed at 2025. 10. 8.
- Yeo IS. Korean medicine, see it as science? Research Institute for Healthcare Policy Korean Medical Association 9(3):70-5.
-
Lee CY, Searching for a New Path to Research on Basic Theory of Korean Medicine: Metaphorical Understanding of Korean Medicine Theories and Terminologies, Journal of physiology & pathology in Korean Medicine 2021;35(5):139-50.
[https://doi.org/10.15188/kjopp.2021.10.35.5.139]
- Chen Z, Ancient medical historical materials discovered in Xiyin stamp of wooden tablets, History of Science Collection 1958;1
- Yu SC, Concise histor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Fujian Sci & Tech Publishing, 1983:56-7.
- Kim KW, Kim NI, Kim DH et al., Lectures on History of Chinese Medicine, Daesung Medibooks, 2006:73.
- Ji WP, Influence of integrated Chinese and western medicine on the development of TCM. SHJTCM, 2014;48(11):3-7.
- Tao FY, The Change of Western Missionaries’ Perception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Historical Research, 2010;5:60-79.
- Zhou MX, History of Modern Chinese and Western Medicine in China(series end), Journal of Traditional Chinese Medical Literature 2001(4):51-3.
- Ku NP, Seol SS, Limits of Innovation in Korean Medicine Industry, Journal of Korea Technology Innovation Society, 2015;18(4):667-92.
- Constitutional Court 2013. 2. 28. Sentence 2011 Heonba398 Full court [Medical Law Article 27 Paragraph 1 etc. Constitutional petition] [Heonjib25-1, 74]. https://casenote.kr/헌법재판소/2011헌바398, Accessed at 2025. 10. 13.
- Supreme Court 2022. 12. 22. Sentence 2016 Do 21314 Full bench Judgement [Violation of the Medical Law] [Gong2023Sang,297]. https://casenote.kr/대법원/2016도21314, . Accessed at 2025. 10. 13.
- Jeon BJ, Kim KH, A Study on the Precedents about Violation of the Medical Service Act in Accordance with Use of Ultrasonic Diagnostic Equipment of Korean Medicine Doctors, The Journal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2023;31(1):386-40.
- Ahn YR, Baek KH, A Study on the medical unification and the protection of medical consumers, Journal of Consumer Policy Studies 2023;54(1):121-40.